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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동의 유령을 닮은 머그잔

문래동의 유령을 닮은 머그잔

머그잔을 위한 변명

저는 머그잔에 대한 지론이 하나 있습니다. 최고의 머그잔이란 어딘가 조금 흠이 있고, 사연이라도 품은 듯 살짝 묵직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너무 세게 쳐다보기만 해도 깨질 것 같은 섬세하고 투명한 도자기 찻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커피 마시기 전엔 말 걸지 마시오" 같은 문구가 적힌 거대한 장난감 머그잔은 더더욱 아니고요. 그런 건 잔이라기보다 차라리 도와달라는 절규에 가깝지요. 제가 말하는 건 '내공'이 있는 머그잔입니다. 손에 잡히는 질감이 있고, 유약은 고르지 않게 발렸으며, 소용돌이치는 세상에서 나를 붙잡아주는 닻처럼 묵직한 느낌을 주는 그런 잔 말입니다. 유사시엔 호신용으로 쓸 수도 있을 법한 그런 머그잔이요.

새삼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며칠 전 머그잔 하나에 마음을 살짝 빼앗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바로 저 잔이지요. 오래된 리넨 같은 미색에, 테두리는 고르지 않습니다. 도공이 물레를 돌리다 한숨이라도 내쉰 듯 한쪽이 살짝 내려앉아 있고요. 두툼하고 튼튼한 데다 손가락 세 개가 넉넉히 들어가는, 제대로 일하는 사람의 손 같은 우직한 손잡이가 달려 있습니다. 매끈함이나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머그잔은 제 쟁반 위에, 서울에서 세련됨과 섬세함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성수동 한복판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요즘 프리랜서의 '삼위일체'를 완성하는 나머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디지털 세상의 수많은 의무를 뿜어내는 노트북의 환한 불빛, 그리고 초점은 살짝 흐려졌지만 버터 향이 고소하게 피어오를 것만 같은 황금빛 소금빵. 누가 봐도 완벽한 장면이었습니다. 21세기 도시 생활을 담은 한 폭의 그림이었죠. 하지만 제 시선을 사로잡은 건 노트북도, 빵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머그잔이었습니다. 이 잔은 성수동의 물건처럼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전혀 다른 어딘가에서 온 것 같았습니다. 마치 유령 같았다고 할까요.

잘 짜인 멋의 시대

성수동이 어떤 곳인지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이곳은 브랜딩 전문가, 건축가, 그리고 아주 멋진 바리스타들이 위원회라도 꾸려 디자인한 듯한 동네입니다. '서울의 브루클린'이라는 별명 말입니다. 어느 동네든 월세가 세 배로 뛰기 직전에 얻게 되는 바로 그 수식어지요. 낡은 제화 공장과 창고는 깨끗하게 단장하고 거대한 카페와 갤러리, 온갖 수제품을 파는 부티크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미학적 컨셉은 '인더스트리얼 시크'인데, 이건 공장의 시각적 요소들, 그러니까 노출된 벽돌, 광택 나는 콘크리트 바닥, 천장의 배관 등은 그대로 가져오되, 실제 산업 현장의 때나 노동의 흔적은 쏙 뺐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진정성을 연기하는 것,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연기입니다. 모든 것이 예술적으로 낡아 보입니다. 조명은 언제나 셀카가 가장 잘 나오는 각도를 유지하고요. 공기 중엔 싱글 오리진 원두 향과 값비싼 가죽 제품 냄새가 감돕니다. 사람들은 그냥 걷지 않습니다. 산책하고,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미니멀한 벤치에 예술적으로 몸을 배치하지요. 오후 한나절을 보내기엔 더없이 사랑스러운 곳이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늘 이곳이 영화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의식하게 됩니다.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이 최고의 인생을 사는 모습을 다룬, 아주 스타일리시하고 제작비도 넉넉히 들어간 영화 세트장 말이죠.

그리고 이 완벽하게 기획된 세상으로 제 쟁반이 들어옵니다. 검고 고요한 커피가 소박하고 울퉁불퉁한 머그잔에 담겨 있습니다. 이 머그잔은 이질적인 존재입니다. 어느 브랜드 제품도 아니고, 무언가를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머그잔일 뿐입니다. 잔을 손에 쥐자, 저는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성수동 카페의 매끄럽고 시원한 공기는 희미해지고, 다른 감각들이 깨어났습니다. 정확히는 제 기억이 아니라, 도시의 가까운 과거로부터 온 속삭임 같은 집단적 기억이었지요. 사진 밑에 달 설명은 저절로 써졌습니다. "꼭 옛날 문래동 같네."

철과 예술의 메아리

최신 유행의 정점인 성수동에서 '옛날 문래동'을 느끼는 건, 마치 테크노 클럽에서 민요를 듣는 것처럼 생경한 일입니다. 문래동이 지금처럼 주말 나들이 장소로 변모하기 전, 그곳은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구역이 그렇지만, 그곳은 작은 철공소와 금속 가공 업체들이 빽빽이 들어선 좁은 골목의 미로였습니다. 수십 년간 그곳의 공기 중에선 쇳가루 맛이 났습니다. 배경음악은 규칙적으로 망치를 내리치는 소리, 용접 토치의 '치이익' 하는 소리, 쇠를 가는 날카로운 소리였지요.

그러다 15년 전쯤, 예술가들이 조용히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임대료가 쌌고, 천장이 높은 동굴 같은 작업장은 스튜디오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거든요. 그들은 개조하기보다 공존하는 쪽을 택했습니다. 여전히 가동 중인 용광로 옆에 이젤과 용접 장비를 펼쳐 놓았죠. 예술은 흰 벽의 갤러리에 갇히지 않고 거리로 흘러나왔습니다. 골목을 돌면 고철로 만든 거대한 초현실적 조각상이 나타나고, 몇 시간 전만 해도 공장의 입구였을 철제 셔터문 위에는 눈부신 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생긴 카페들도 비슷한 정신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술가들이 웃풍이 드는 낡은 공간을 고쳐서 문을 열었지요. 가구는 주워 온 의자와 직접 만들었을 법한 테이블이 멋스럽게 뒤섞여 있었습니다. 커피는요? 진하고 뜨거웠고, 바로 제가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머그잔에 담겨 나왔습니다. 모양보다는 기능을 위해 선택된 머그잔, 렌치 옆 작업대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아도 끄떡없는 머그잔이었죠. 그 잔들은 정직한 공간에 놓인 정직한 물건이었습니다. 무언가를 실제로 만드느라 바빠서 굳이 멋을 연기할 필요가 없었던 곳의 물건 말입니다.

어떤 감각을 좇아서

그렇다면 어째서 이 화려하고 세련된 성수동의 카페가, 더 거칠고 유기적이었던 그곳의 유령을 소환해낼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의도적인 연출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주인이 그 시절을 좋아해서, 덜 상업화되었던 시절을 향한 조용한 경의의 표시로 이 아름답고 불완전한 수제 도자기를 들여놓았을 수도 있지요. 유행을 찍어내는 기계의 심장부로 몰래 들여온 작은 반항이랄까요. 아니면 그저 사랑스럽고 튼튼한 물건을 만드는 도예가를 만난 행복한 우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효과는 있었습니다. 머그잔은 시공간의 간극을 메워주었습니다. 성수동이 파는 미학, 즉 '인더스트리얼' 분위기란 문래동 같은 곳의 진짜 노동하는 삶을 깔끔하게 다듬어낸 메아리라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죠. 우리는 거친 모서리를 사포로 밀고, 콘크리트 바닥에 광을 내고, 공기 중의 쇠 비린내를 걸러내 과거의 안전하고 먹기 좋은 버전을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어떤 느낌, 즉 '보여주기'보다 '만들기'에 충실했던 도시가 남긴 환상통 같은 감각을 좇고 있는 것이지요.

따뜻하고 묵직한 잔을 들고, 저는 제가 찍은 흐릿한 사진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선명한 상업 사진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느낌을 포착한 사진이었죠. 초점은 부드럽고 배경은 불분명합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유행하는 소금빵이나 매끈한 노트북이 아니라, 조용하고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는 찻잔입니다. 기억이 실시간으로 촉발되는 순간을 담은 사진이었습니다.

커피는 맛있었습니다. 마침내 맛본 소금빵은 더 맛있었고요. 하지만 쟁반 위에서 가장 근사했던 건 바로 그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트렌디한 동네의 북적이는 카페에서 보낸 몇 분 동안, 저는 단지 일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시간 여행을 하고 있었죠. 제대로 된 그릇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아무리 세련되게 다듬어진 공간이라도, 때로는 손안에 쥘 수 있는 작고 단단한 과거의 조각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 머그잔이 일깨워주었습니다. 꼭 필요할 때 만난, 조용한 닻처럼 말입니다.

Source: Instagram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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