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그릇의 해부학
우선 소스부터 시작해 볼까요. 그릇 한쪽에 고인, 잉크처럼 새까만 저 정체 모를 소스 말입니다. 바로 자장 소스죠. 발효한 검은 콩을 달래고 어르니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짭조름하고 살짝 달콤한 무언가로 거듭났습니다.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되는 유명인사처럼 조용히, 자신감 있게 자리를 지키고 있죠. 곧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을 거라는 걸 안다는 듯이요. 그 옆에는 황금빛 계란, 얇게 썬 양파, 그리고 부드러운 오징어처럼 보이는 것들이 어우러진 볶음밥이 명랑하게 산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건 그냥 식사가 아닙니다. 접시 위에서 펼쳐지는 외교 임무랄까요. 그리고 사진 설명에 따르면, 평가는 간단합니다. “괜찮다.” 말 그대로 괜찮다는 거죠. 좋다는 뜻이고, 나쁘지 않다는 뜻입니다. 온갖 과장이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 이보다 더한 칭찬이 또 있을까요.
세기의 대결
이 한 접시에 담긴 조용한 천재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모든 중국집 메뉴판의 핵심에 자리한 근본적인 갈등을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무실과 원룸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음식계의 내전이죠. 한쪽에는 자장면이 있습니다. 그 진하고 검고 편안한 검은 콩 소스에 흠뻑 젖은 국수 말입니다. 이삿날, 어린 시절 생일,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먹던 바로 그 음식. 그릇에 담긴 따뜻하고 고소한 포옹 같은 음식이죠. 다른 한쪽에는 짬뽕이 있습니다. 해산물과 채소, 국수로 가득 찬 시뻘겋고 불같은 국물은 막힌 코를 뻥 뚫어주고 영혼을 번쩍 깨워줍니다. 열정이고, 드라마이며, 정신 차릴 필요가 있을 때 엉덩이를 걷어차 주는 기합 같은 존재입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건 성격 테스트나 다름없습니다. 안락함과 설렘, 안정과 모험, 든든한 친구와 불같은 사랑.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수십 년간 사람들은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아 왔습니다. 이 문제로 가정불화가 생기고(물론 농담이지만, 거의 그럴 뻔한 적도 있죠), 우정에 금이 가기도 했습니다. ‘자장이냐 짬뽕이냐’ 하는 질문은 그 어떤 철학적 질문만큼이나 심오합니다.
하지만 제3의 길이 있습니다. 평화주의자, 실용주의자, 흑백논리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현명한 영혼들을 위한 길이죠. 바로 볶음밥입니다. 그냥 볶음밥이 아닙니다. 핵심적인 액세서리, 즉 옆에 곁들여 나오는 자장 소스 한 국자가 함께하는 한국식 중화요리 볶음밥입니다. 이 접시는 메뉴판의 스위스 같은 존재입니다. 어느 편도 들지 않죠. 웍에서 볶아낸 만족스러운 불맛을 선사하면서, 동시에 자장면의 세계도 살짝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두 세계의 장점만 쏙쏙 뽑아낸, 맛의 세계 사이에 맺어진 불가침 조약이랄까요. 담백하고 고소한 밥이라는 캔버스를 받아들고, 마음 가는 대로 그 진하고 오묘한 소스를 칠해 먹을 수 있으니까요.
'괜찮음'이라는 아주 특별한 미덕
사진 설명이 모든 걸 말해줍니다. “괜찮다”. 그냥 괜찮다는 겁니다. 별점 5개, 숨 가쁘게 맛집을 소개하는 블로거들, 그리고 뭐든지 ‘역대급’이어야 한다는 끊임없는 압박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이 소박한 평가는 시원한 물 한 잔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에는 제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끼는 정직함과 현실 감각이 있습니다. 인생을 바꿀 만큼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 식사는 아니었습니다. 먹는 이를 기쁨의 눈물에 젖게 하거나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지도 않았죠. 그냥… 괜찮은 한 끼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걸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그저 ‘괜찮다’고 인정하는 것이 실패처럼 느껴지는 문화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휴가는 ‘역대급’이어야 하고, 새로 산 커피 메이커는 ‘혁신적’이어야 하죠. 점심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이벤트이자, 하나의 이야기, 하나의 정복이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삶의 대부분은 ‘꽤 괜찮은’ 것들이 모여 이루는 따뜻하고 아늑한 골짜기에서 펼쳐집니다. 언제나 시동이 걸리는 믿음직한 자동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까딱이게 하는 노래, 발에 물집 하나 잡히게 하지 않는 튼튼한 신발처럼 말이죠.
이 볶음밥 한 접시가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음식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지 않아요. 식용 꽃으로 장식하거나 트러플 오일을 뿌리지도 않았죠. 이 음식의 임무는 간단합니다. 맛있고 만족스러운 점심이 되어 주는 것. 밥은 고슬고슬하고, 계란은 고소하며, 채소는 아삭하고, 오징어는 부드럽습니다. 소스는 진하고 풍미가 넘치죠. 약속한 바를 정확히 지킵니다. 거기에는 깊고 조용한 진정성이 있습니다. 오후 내내 든든하게 힘이 되어주고, 배 속에서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웅웅거리며, 혼란스러운 하루의 한가운데를 버티게 해주는 작지만 튼튼한 닻처럼요.
비비느냐, 마느냐
접시를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한쪽에는 검고 윤기 나는 소스의 대륙이, 다른 한쪽에는 다채로운 질감의 밥이 펼쳐져 있습니다. 경계가 분명하죠. 이제 먹는 사람 앞에는 또 다른 선택지가 놓입니다. 그리고 이 선택은 생각보다 그 사람의 성격을 훨씬 더 많이 드러냅니다. 자장 소스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주로 두 가지 학파가 있습니다. 우선, 소스에 찍어 먹는 ‘찍먹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신중하고 체계적인 유형입니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소스에 끝만 살짝 담그죠. 한 입 한 입 소스와 밥의 비율을 조절하고 싶어 합니다. 대비되는 맛을 즐기죠. 각 요소를 분리해두고, 잠시 섞이기 전에 각각의 맛을 온전히 음미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찍먹파는 질서를 유지합니다. 아마 책상도 아주 깔끔하고 달력도 잘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이들은 요리의 순수성을 지키는 수호자들입니다.
그리고 ‘비빔파’가 있죠. 아, 이 맛있는 혼돈의 주창자들. 이들은 두 개로 나뉜 요소를 보자마자 하나로 합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숟가락을 몇 번 휙휙 저어 검은 소스를 밥에 섞어버리죠. 접시 전체가 먹음직스러운 갈색으로 통일되는 순간입니다. 이들은 하나에 온전히 마음을 주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위대하다는 시너지를 믿습니다. 일단 뛰어들고 보는 거죠. 비빔파의 책상은 좀 어수선할지 몰라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는 정확히 압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뒤섞임을 끌어안는 사람들이죠.
고백하건대, 저는 뼛속까지 비빔파입니다. 접시가 제 앞에 놓이는 순간, 통합을 향한 강렬한 충동을 느낍니다. 위대한 통합이 끝난 뒤, 따뜻한 밥알이 짭짤하고 달콤한 소스에 완벽하게 코팅된 첫 숟갈은 그야말로至福의 경지입니다. 하나의 영광스러운 맛의 경험에 모든 것을 거는 거죠. 하지만 찍먹파도 존중합니다. 그들의 절제력과 꼼꼼함이 감탄스러워요. 이 우아하고 단순한 한 접시는 두 가지 성격 모두가 각자의 즐거움을 찾도록 허락합니다.
결국 이건 의정부의 한 식당에서 파는 볶음밥 한 접시일 뿐입니다. 세계 평화를 해결하려는 건 아니지만, 매일 반복되는 ‘자장이냐 짬뽕이냐’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었죠. 모든 경험이 정점을 찍을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때로는 가장 심오한 순간은 조용한 순간, 그냥… 괜찮은 순간들입니다. 배를 채워주고 마음을 데워주면서, 깨끗이 비운 접시와 조용한 긍정의 끄덕임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요. 때로는 완벽하게 괜찮은 것이야말로 완벽한 상태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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